8. 성경을 읽을때 by 박청직 목사님
06/04/20  

Holy Scripture, 성경을 읽을 때


I.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요?
요한복음 5:39절 말씀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은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 성경을 말하는것 입니다. 주님 당시 신약은 없었기 때문 이지요.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부터 말라기 까지 기록되어진 모든 말씀에는 여러가지 사건들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며, ϴ의 온갖 기적과 이적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시편, 잠언, 전도서 들을 통해서는 간구와 고백과 여
러가지 교훈들이 나옵니다. 또 성전에 대한 이야기, 지켜야할 율법들이 나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역사서요, 그들이 그렇게 지키며 살아야할 교훈들을 기록하고 있는것 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서에 담겨진 모든 이야기와 사건들과 내용들이 다름아닌 Jx를 나타내고 증거하는 것이라고 했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 신구약 전체를 볼 때 구속사적 (Historical Redemption) 입장에서 보아야 하며, 또한 그 내용의
의미들이 나에게 향하신 ϴ 이 의도 하신바 목적이 나에게 경험적인 실제가 되는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 드려야 한다는 것 입니다. 생명의 말씀들이 나의 삶에 또는 나의 인격에 그대로 적용이 되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지식으로 남는 이야기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신앙에는 도무지 유익이 되지 못할것 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내용들이 예수님과 나와 밀착된 관계가 형성이 (intimate relationship) 되도록 말씀을 대면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영생을 가저다주는 일에는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II. 말씀을 상고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깔려있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그 의도하신바 결과를 분명하게 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깔려있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향하신 ϴ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성경을 읽어도 하나의 신학적 논리나 교리로 밖에는 안될것 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향하신 ϴ 의
의도하신바 목적과 그 뜻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에 흡수되어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 말씀 따라 순종하는 나의 모습 속에 Jx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의 삶에 실제가 되지 못하고 성경을 지식으로만 알게되는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Hypocrisy,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장로들과 제사장들은 모세 오경과 예언서들에 대해서 능통했읍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본주의적 지식 때문에 주님으로 부터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주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독사의 자식들이라,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을 하신것은, 그들이 많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삶이 전혀 없었기 때문 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라는 영적인 의미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영감있게 깨닫는 다면, 영성적인 신앙인 으로서 세워지는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III. 왜 말씀이 나에게 실제가 되어야 하는가요?
그것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려는데 목적이 있음을 깊이있게 보아야 합니다. 다음 말씀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요.
엡 4:11-15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Jx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 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의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용동하지 않게 하려함이라. 오직 범사에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 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시라” 주님의 지체인 교회에 주님이 각각 직분을 주신 목적이 무엇이라 했나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주님의 몸을 세우려는데 목적이 있다고했습니다. ϴ의 아들 Jx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게 하기 위함 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온갖 속임수, 간사한 유혹, 온갖 종교인으로 만드는 교훈의 풍습에 빠져서 흔들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읍니다. 자세히 깊이있게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향해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온전한 사람이란, 일반 교양인이나, 윤리 도덕적인 사람을 말하는것 아닙니다. 종교인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생명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생명을소유한 영성적인 신앙인을 (The faith of the Spiritual Nature)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올바른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확실하게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골 1:28 에도,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Jx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라” 라고 했읍니다. 그렇습니다. 완전한 자로 세우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단순한 ϴ의 자녀 삼으시려는것 아니라고 했읍니다. 자녀들 가운데는 망난이도 있고, 불효한 자녀도 있고, 미련한 자녀들, 저
능아 , 기형아, 등 등 있읍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 있어서는 ϴ자녀는 자녀인데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나로 하여금 완전한 ϴ의 사람으로 세우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성경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ϴ 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고작 나로 하여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저능아, 기형아를 만드시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다시 오심은 다름이 아니라나로 하여금 ϴ 이 육신의 몸을입고 이 땅에 오신 Jx와 같은 형상의 모습으로 온전히 세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강조 하고 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 같이 나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말씀을 나의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매일 말씀을 상고함이 없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음 말씀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요. 주님이 무엇이라 하셨나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바르지 아니하리라” (요 6:36)
주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면, 나는 날마다 그 생명의 양식을 취해야 할것 입니다. 먹지않고 마시지 않는 결과는 어떻게 되지요? 사망 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믿지 않는 결과 때문인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영혼의 양식을 날마다 섭취해서 풍성하게 하여 성숙
성장 장성하여 주님의 형상에 까지 이를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주님 말씀하시기를,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ϴ 이 보내신자 곧 Jx를 믿지 아니함이라.” (요 5:38) 자세히 깊이있게 관찰해 보십시요.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있지 않으면 어떤 상태라고 했나요? Jx를
믿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읍니다. 거한다는 말은 머물러 산다는 뜻 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은 Jx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했읍니다. 따라서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말씀 따라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 아닌가요? 그 역동적인 믿음의 움직임이 주님의 형상 으로 닮아가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했읍니다.
본문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요?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했읍니다. 주님의 말씀이 생명이라고 했읍니다. 또한 말씀 그 자체가 주님이라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을 대면하고 읽을때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말씀을 대해야 할것인가 하는것은 자명한것 입니다.


IV. 따라서 생명의 말씀은 나에게 실제가 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딤후 3:15-17 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흔히 우리는 믿음을 가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믿음은 Jx 안에 있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라고하는, 내 믿음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믿는 내 믿음은 나의 의를 나타내기 쉬운 것이고, 종교인으로 전락하기
쉬운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에 대해서 심도있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떻게 Jx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도록 접근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늘 강조 하는것 이지만,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모습, 나의 실상이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나를 향하신 ϴ 이 어떤 분이시며, 나를 위해서 어떠한 일들을 행하셨고, 또한 무엇을 행하시고 계시는가? 이것이 경험으로 깨달아야 하는것 입니다. 십자가의 5중적인 복음이 확실하게 나에게 알아지고 경험이 되어질때 비로서 Jx 안에 있는 믿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5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5중적인 복음이란 무엇인가요?
1 째로, ϴ 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이 나의 죄때문에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나는 속죄의 은총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나에게 보여저야 합니다.  2 째로, Jx가 나와 함께 연합하여 나의 혈육에 속한 옛 사람과 함께 죽으셨다는 것 입니다. 혈육에 속한 옛사람과 함께 죽었다고 했을때 옛 사람과 새사람의 개념이 어떠한 것인지 영감있게 정리가 확실하게 되어야 합닌다.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 옛사람과 새 사람. 이 양자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는지 그 실상을 확실하게 보아야 합니다. 3 째로, 죽으실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연합하여 죽어 장사지낸바 되었다는 것 입니다. 나의 무엇이 연합하여 죽어 장사 지낸바가 되었다는 것인가요? 그 결과는? 또 나타는 현상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그 실상의 내용과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4 째로,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부활 승천 하셨다 것입니다. 승천하셨을 때 나의 위치
는 어디에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가요? (골 3:3-4,벧전 1:3-4) 그 의미를 깊이있게 보아야 합니다. 5 째로, 주님은 약속 하신대로 다시 오셨는데 어디로 오셨는가요? 내 안에 까지 오셔서, 내 안에 內住하고 계신다고 하는 이 실상이 내 마음에 와 닿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라는 관계 형성이 보여 지게 되며, Jx 안에 있는 믿음이 나를 구원 하셨다는 이 진리가 영감있게 깨달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는 믿음의 사역자라면, 상기한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신 5중적인 복음의 내용의 실상을 폭넓게 또 깊이 있게 영감으로 깨달아저야 합니다. 경험으로 나에게 실상으로 내 마음에 와 닿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나에게 주신 목적은 그냥 읽으라고 주신것 아닙니다. 상식으로 알아 두라고 주신 것도 아닙니다. 윤리 도덕적인 좋은 사람이 되라고 주신 것 아닙니다. 주신 목적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
으로 온전케 하는데 있다는것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주님 말씀에 접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것 아니겠어요?
문제는 어떻게 지체하지 아니하고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도록 하느냐 하는 것은 사역자의 몫 입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세운 집사, 권사, 전도사, 교사, 장로, 목사, 선교사, 목장의 목자들의 몫 입니다. 왜? 주님이 교회에 이러한 일꾼들을 세우셨다고 했나요? 사역의 몫을 감당하기 위해서 세운것 아닌
가요?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주님 앞에 섰을때 나는 어떻게 되어질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로서 적극적으로 배워야 하고 구체적인 훈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하여 함께가는 신실한 Ibc 모든 성도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 우리는 먼저 이 땅에서 반드시 主님과 밀착된 관계 영성이 실제로 이루어 져야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게 실제가 되는 가장 우선 되는것은 성경을 읽을 때 그냥 읽어 지식에 축적 하는 것 이아나라, 읽는 그 말씀들이 직접 나에
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을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의 삶에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역자의 몫인 것입니다. 직분은 그냥 감투로 주신것 아닙니다. 그런고로 새로운 기회의 계기를 마련 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비이러스 때문에 교회 출석도 못하고,
집안에 있어야 할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은 나에게 주어진 크나큰 축복의 기회로 포착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기회를 통해서 Ibc 에 속해있는 30대 40대 50대 이상, 여러분들은 말씀에 능한 평신도 사역에 전문가 들이 다 되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Ibc를 변화시키며, 많은 열매들을 맺어
나가야 할 일꾼들 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과연 그러한가 성경을 날마다 상고 함으로서, 당시 Hellenism 이 흥했든 헬라 사람들 중에 믿는 귀부인과 남자들이 많았다고 했읍니다. 유대교와 헬라 사상은 이질 적인 것이 였지만 그러나 ϴ의 말씀은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창출해낸 것 입니다. 신학 석사라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 박사라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석사, 박사 학위가 있어야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확실하게 거듭남의 경험과 지속해서 기도하며, 생명의 말씀에 접목된 ϴ의 자녀라면 누구든지 ϴ의 사역자가 될 수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ϴ의 약속 입니다.  “우리가 다 ϴ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라고 했읍니다. (엡 4:13)
우리라고 했읍니다. 우리가 누구 입니까? 평신도 한사람 한사람을 말 합니다. 또 하나가 되어 라는 말은 함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한다고요? 우리가 하나되어 함께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Jx 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른다고 했읍니다. 영적인 믿음의 vision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Ibc 여러분들은 사람을 변화 시키는 말씀을 날마다 깊이있게 상고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서로 격려하며, 함께 배워 나가십시요. 그리고 함께 세워주며, 함께 믿음의 사역의 일들을 만들어 내는 선택받은 믿음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이 원로 목사는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권면
하며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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